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 (문단 편집) == 배경 == [[대한민국]]의 고도성장기 에너지 정책은 '''주탄종유(主炭從油)'''라는 글자로 설명할 수 있었다.[* 하단에서도 서술하는 바와 같이 [[1970년대]] 초 이전에는 상황에 따라 정책에 가변성이 있었다. 연탄파동을 호되게 겪고 난 1970년대 초에는 일시적으로 [[석유]] 비중을 늘리기도 했다.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당시 실제로 관료나 언론이 주유종탄이냐 주탄종유냐를 가지고 꽤 옥신각신하였다.] 즉 [[연탄]]을 비롯한 [[석탄]]을 주 에너지원으로 하고 [[석유]]를 보조 에너지원으로 하는 정책 기조를 유지해 왔다. 석유는 비싸게 수입해야 했고, 석탄은 [[무연탄]] 중심이지만 탄광도 적지 않고 매장량도 [[자급자족]]을 할 정도로 많았기 때문이었다. 또한 당대에는 산림황폐화가 심각한 문제였기 때문에 연탄으로 대체하면 나무를 베는 양이 줄어들어 [[녹화사업]]에 도움이 될수 있었다. 정부는 [[경제계획(대한민국)#s-6|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]]에 맞춰 국민의 에너지인 석탄 [[채굴]]을 독려하는 정책을 추진하여 [[1988년]]이 되면 [[1963년]]의 세 배 가까운 채굴량을 기록하게 되었다. 단순히 채굴만을 독려하는 것이 아닌 수송에도 신경을 썼다. [[산업선]]으로 불리는 [[중앙선]], [[영동선]], [[태백선]], [[문경선]], [[가은선]]등의 신설과 선로 개량 및 전철화 등의 개량이 이 시기에 이뤄졌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 [[수도권(대한민국)|수도권]]에서는 늘 [[겨울]]만 되면 연탄 대란이 나곤 할 정도였으니 정부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. 석탄을 채굴하는 [[광부]]들은 힘들고 위험한 일을 매일 해야 했으며 탄광촌의 생활 인프라도 결코 좋지 않았지만 그만큼 급여는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었고 시간이 지나면 사북[* [[정선군]]], 고한[* [[정선군]]], 태백 지역에서는 속된 말로 [[지나가던]] 개도 [[1만원권 지폐|1만원짜리 지폐]]를 물고 다닌다고 이야기를 할 정도로 해당 지역의 경제도 활성화되었다.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1만원이 수표대용으로 써도 무방할 정도로 큰 금액이었다는것을 생각하면 해당 지역에서 현금 만져본 업자나 업주들이 많았다는 얘기라는 것이다. [[강원도]] 탄광 지역이 잘 나가던 때의 대표적인 유산이 [[EEC 전동차]]로서 상대적으로 요금이 비쌌던 [[무궁화호]] 등급임에도, 일반실은 [[통일호]] 수준의 시트였음에도 불만은 나올지언정 수요는 꾸준했다.[* 사실 이 시기 무궁화호 일반실의 좌석은 통일호 일반실과 별 차이가 없었다. 그래도 선풍기가 달렸던 일부 통일호와 달리 무궁화호에는 전량 에어컨이 달렸다. 현재 우리가 흔히 아는 무궁화호의 리클라이닝 좌석은 90년대 제작된 [[무궁화호 장대형 객차]]부터 장착되기 시작한 것이고, 7, 80년대에는 [[새마을호]] 같은 최고급 열차에나 장착되는 호화 좌석이었다. EEC 전동차에는 리클라이닝 좌석이 장착된 특실이 있었다.] 하지만 [[1980년대]] 중반부터 유가가 안정되고 석탄광산이 심부화[* [[한반도]]의 탄광은 탄층이 매우 깊은 곳에 위치해 있어 갱도 개설에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. 이에 대규모 기계 채굴이 어려워 생산단가가 높다.]되어 국내산 무연탄의 가격경쟁력이 약화되기 시작하였다. 여기에 더해 [[국민소득]]의 증가로 청정연료의 수요가 증가하며 [[대단지 아파트]]의 건설이 시작되는 등의 사회구조적 변화가 발생하였다. 이에 에너지 정책이 [[석유]]와 [[천연가스]]를 포함한 '''주유종탄(主油從炭)'''으로 전환되게 되었다. 석탄에 비해 석유는 취급도 쉽고 열량도 높았으며 [[환경 오염]]도 적으며 [[일산화탄소 중독]] 위험도 한결 낮았다. 이미 그 전부터 가정에서는 취사용으로 연탄 대신 [[석유풍로]]를 더욱 선호하여 연탄은 [[난방]] 및 산업용 연료로서 역할이 점차 줄고 있었으며, 실제로 [[1986년]]부터 무연탄의 수요가 처음으로 감소[* 민수용(연탄용만을 지칭하며 관련 통계 정의 상 산업용 및 발전용을 제외한 값이다.) 소비는 1987년부터 감소하였다.]하기 시작하였다. 또한 연탄을 겨울철 연료로 썼던 특성상 겨울철만 되면 [[스모그]]로 몸살을 앓았는데 [[1988 서울 올림픽]] 개최로 환경 개선에 관심을 두던 정부 입장에서도 주유종탄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고 그 결과가 [[채산성]]이 낮은 탄광의 [[폐광]]을 유도하고 장기가행탄광을 선정하는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